보지마셍

CEO 금난새 이야기

jhk307303 2006. 9. 11. 11:18

CEO 금난새 이야기

 

 

① 금난새와 "벤처 오케스트라"

 

서울 시내 한 호텔. 지휘자 금난새(56) 감독이 세계경영연구원 초청으로

강연대에 섰다. 강연 제목은 ‘벤처경영’.

기업체 CEO(최고경영자) 30여명을 앞에 놓고 그는 음악 대신

벤처기업 경영술이며 CEO 리더십을 주제로 1시간 동안 강연했다.

강연을 들은 한 중소업체 사장은 “발상이 기발하다.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금난새씨는 자타 공인의 정상급 지휘자다.

금 감독은 스스로 벤처기업 CEO임을 자처한다.

KBS교향악단과 수원시향을 거쳐 그가 지난 98년 창단한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역시 ‘벤처형(型) 악단’을 표방하고 있다.

그의 악단은 지난해 유료관객 동원수 1위(6만여명·4~12월)를 기록,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정상급에 올랐다.

 

‘금난새식(式) 경영술’이 주목받는 것은 대중동원의 성공 때문만이 아니다.

정부·지자체에 손 벌리지 않고는 악단 운영이 불가능하던 풍토에서,

그는 오케스트라도 기업처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냈다. 티켓 판매나 기업체 계약을 통한 자체수입만으로 훌륭하게 악단을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라시안 필하모니의 ‘본사’는 도서관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1층. 금 감독이 내민 명함엔 ‘음악감독 & CEO’란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유라시안 필은 주식회사 아닌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그런데도 CEO임을 고집하는 것은 악단을 ‘경영’하겠다는 의지표현인 셈이다.

 

“정식 단원이 45명인데, 월급 주고 꾸려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금 감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고, 고객 기반과 수익원을 창출해가지

않으면 버티지 못한다”며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라시안 필은 약 14억원을 벌었다. 그중 절반 가량은 공연 수입금이고, 나머지는 기업체와 계약해서 받은 후원금이다. 후원금이라지만 한 푼도 공짜로 받지 않는다. 기업 홍보 등을 위해 공연을 해주고 그 개런티로 받는 것이다.

 

예컨대 유라시안 필은 삼성전자의 가전브랜드 ‘지펠’과 ‘파브’의 홍보를 위해

매년 2번의 공연을 해준다.

공연에선 지휘자 금씨의 악보를 종이 대신 평면스크린(PDP)으로 대체해

제품 홍보를 노리는 식의 아이디어가 동원되곤 한다.

음악과 비즈니스의 절묘한 결합이다.

 

5년 전 수원시향(상임지휘자)을 그만두고 유라시안 필을 창단했는데, 10여명의 단원이 저를 따라 나왔습니다. 이들을 책임지려면 돈을 벌어야 했지요.”

 

금 감독은 오케스트라의 컨셉트를 ‘공격 경영’으로 잡았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모험을 감수한다는 ‘벤처형 오케스트라’의 슬로건 아래, 관객이 오길 기다리지 않고, 이쪽에서 관객을 찾아가 끌어 들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번듯한 콘서트홀이 아니어도, 도서관 강당이며 시민회관처럼 관객이 모일 공간은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찾아 다녔다.

6~7시간을 내리 연주하는 마라톤 콘서트,

지금은 명물이 된 포스코빌딩 1층 로비의 ‘로비 음악회’가 이렇게 탄생했다.

 

교향곡을 들으며 새해를 맞는 제야(除夜) 음악회를 처음 시도해 유행시킨 것도 그였다. “오케스트라가 백화점이라고 칩시다. 고객이 있는데 백화점이 연말이라고 영업을 안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고정관념을 깨는 적극적 발상이 ‘금난새식 경영’의 첫 번째 키워드다.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철저한 고객지향성으로 소화해 비즈니스로도 성공시킨 것이다.

 

도서관에 거점을 튼 발상부터 엉뚱하다. 소리가 나선 안 될 도서관과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는 상극(相剋) 아닌가.

그에 따르면 우연히 중앙도서관의 큼직한 강당을 보고 이거다 싶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당을 연습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다.

 

물론 공짜는 없다.

대신 1주일에 한 번 도서관 이용객을 위해 로비에서 연주회를 열어주기로 했다. 음악 값으로 집세를 낸 것이다. 음악으로 돈을 벌어 채산을 맞추는 금난새의 ‘기업형 오케스트라’ 모델은 이렇게 자리를 잡아 나갔다.

② 금난새의 "CEO적 발상"

 

금난새씨의 ‘오케스트라 경영’은 모험(벤처) 정신이 핵심이다.

KBS 교향악단을 12년간 장기 집권한 그는

1992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로 옮기면서 CEO적 발상에 눈을 떴다고 했다.

이때를 그는 “삼성전자 CEO에서 지방 중소기업으로 옮긴 셈”이라고 비유한다.

 

“일류 대기업의 CEO도 좋았겠지요.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도산 직전의 회사를 회생시키는 것이 진짜 CEO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는 모험 쪽을 선택했고, 성공했다.

1년에 10번쯤 연주회를 ‘의무 방어전’ 감각으로 열던 침체된 지방악단을,

연간 공연실적 60회의 활기찬 조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모험정신은 결국 창업(創業)으로 이어져, 98년 ‘월급쟁이 CEO’를 청산하고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창단했다. 51세 때였다.

 

그의 입에 습관처럼 밴 말은 “청중이 원하는 것”이다.

번듯한 콘서트홀이 아니라고 무대에 서지 않는 것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지방 소도시의 시민회관이건, 빌딩 숲이건,

청중이 모이는 곳이면 바로 그곳이 무대라는 것이다.

 

매주 한 번꼴은 단원들을 이끌고 지방에 내려가곤 한다.

유라시안 필하모닉은 지난해 42회의 지방공연을 통해 웬만한 도시를 다 누볐고, 올해도 이미 36회를 소화했다.

 

연주회 후 청중에게 설문지를 돌려 반응을 피드백(되먹임)하는

유라시안 필하모닉 특유의 방식 역시 그의 ‘고객 속으로’ 철학에서 비롯됐다.

작년만 해도 설문지를 3000매 회수해 레퍼토리며 공연 아이디어를 짜는 데

활용했다.

 

그는 “데이터를 가진 회사와 없는 회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는데, 관객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무대에 오를 때면 고객 앞에 음식을 내놓는 요리사 심정이 되지요.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으니 드셔 보시라는….”

 

기업 뺨치는 철저한 고객 지향주의. 고객을 샅샅이 연구해 숨은 니즈(욕구)를

찾아낸다는 CEO 철학은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열린 49번의 공연 중 절반이 넘는 27회가 완전 매진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84회 중 41회가 매진이었다.

 

유라시안 필하모닉엔 연공서열이 없다.

통상 오케스트라에선 고참 선배가 맨 앞줄을 차지하지만,

그는 정반대로 신참이나 객원 연주자를 앞에 앉히곤 한다.

효율성을 따지면 당연한 배치라고 그는 말한다.

 

“지휘봉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연주를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서툰 신참을 뒤쪽에 앉히는 것이 관행이었으니 연주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우리 악단엔 군번(軍番)이 없습니다.

 

기업이 비즈니스를 글로벌 규모로 전개하듯 그의 목표도 ‘글로벌 오케스트라’다. 조만간 중국 순회 연주에 나설 예정이고, 언젠가는 세계 각국의 일류 연주자를 모아 다국적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유라시안’이란 이름도 그래서 지은 것이다.

 

“예술가입네, 지휘자입네 하면서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면 지금쯤 망했을 겁니다. 성공비결이요?

요컨대「CEO 마인드」를 가지려 노력했던 것이 중요했다고 봅니다.”